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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헌정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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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28일 === 1984년 3월 28일, 루이나 전역은 다시 한번 거대한 파도로 뒤흔들렸다. 사흘 전 벌어진 ‘No More King’ 시위보다 더욱 격렬한 목소리와 인원이 쏟아져 나왔고, 이는 정권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진정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신호탄이었다. 이날 시위는 전날 테디 해밀턴 대통령이 극우단체 ‘조국의 방패’를 두둔한 발언 이후 국민적 반발이 폭발한 결과였다. 주요 신문과 방송, 심지어 해밀턴에게 우호적이던 일부 지역 언론까지도 “대통령이 폭력을 승인했다”, “이제 국회가 아니라 거리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는 논조로 돌아선 상황이었다. 수도 벨포르에서는 약 495만 명이 도심에 운집했다. 시청 광장과 루이나 대법원 앞 도로, 국회의사당 남문까지 전 구간이 인파로 가득 찼으며, 시민들은 해밀턴의 사퇴를 요구하며 “우리는 왕을 선택하지 않았다”, “민주주의를 해방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콜마르, 롱비치, 오보레, 크레테 등 80여 개 도시에서도 중·고등학생부터 퇴역 군인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시민들이 시위에 참여했다. 특히 전날 의회 의원 차량을 향한 공격 사건이 보도된 직후였기에, 시위 참가자들의 목소리는 더욱 격앙되었다. 이 상황에서, 대통령궁에서는 대단히 강경한 대응 지시가 내려졌다. 테디 해밀턴 대통령은 내부 지휘 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고 알려졌다. > “이제는 끝장을 볼 때다. 그들이 국가를 거부한다면, 국가는 그들을 멈춰야 한다. 더는 물러서지 말라. 해산시키고, 필요하면 구금하라.” 이에 따라 대통령실은 내무부와 벨포르 경찰청에 ‘현장 검거 및 해산 우선 조치’를 지시했다. 그러나 이 명령은 곧 현장에서 사실상 무력화되었다. 벨포르 경찰청장과 각 도시 경찰서장들은 “현장 상황이 과열될 경우 대규모 충돌과 사망자 발생이 불가피하다”며 현장 진입을 유보하거나, 완화된 방식으로 시위를 방치하는 쪽으로 움직였다. 실제로 일부 시위대는 국회의사당 울타리를 넘으려 했으나, 경찰은 방패벽을 설치하되 진압봉이나 체포조를 투입하지 않았고, 시위대 또한 “비폭력 수칙”을 자발적으로 유지하면서 대규모 충돌은 벌어지지 않았다. 전국적으로 부상자 없이 마무리된 유례없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였다. 내부 소식에 따르면, 벨포르 경찰청은 이미 3.26 시위 당시 경찰 상층부와 정권 간의 온도차를 인지하고 있었고, 강경 진압 시 정권의 정당성이 무너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의도적으로 ‘소극적 대응’을 택했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경찰노조 또한 이날 이후 “우리는 국민에게 폭력을 휘두르지 않을 것”이라는 성명을 내면서, 해밀턴 정부와 명백히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3월 28일 오후 4시 12분, 벨포르 중심부 루테랑 거리에서 루이나 현대정치사상 최초로 자동화기 무차별 난사에 의한 민간인 사망 사건이 발생했다. 이 비극은 테디 해밀턴 대통령이 3선 출마 강행 의지를 거듭 밝힌 가운데, 전국적으로 벌어진 반정부 시위의 와중에 발생한 것으로, 정치적 폭력이 상징이 아닌 현실의 총성으로 바뀐 날로 기록된다. 사건은 시민들이 ‘No More King’ 집회를 마친 뒤 귀가하던 중 발생했다. 시내 중심에서 외곽으로 이동하던 시위 참가자 무리를 향해, 민간 극우조직 ‘조국의 방패(Patriot’s Shield)’ 소속의 20대 남성 조직원 한 명이 불법 개조된 AR-15 소총을 들고 돌연 등장했다. 그는 루테랑 거리와 페르낭 거리 교차지점의 고가 주차장 출입구 위에서 약 60초 동안 무차별적으로 200여 발을 난사했다. 총성이 울린 직후, 거리에는 비명과 피난 행렬이 뒤엉켰고, 수십 명이 순식간에 쓰러졌다. 현장에서 시민 31명이 사망, 52명이 총상 또는 파편상으로 중경상을 입고 병원에 긴급 이송되었다. 사망자 중에는 17세 고등학생 아델린 브루네(Adeline Brunet), 상점 직원이던 41세 여성 이본 트르농(Yvonne Ternon), 퇴직 공무원이던 63세 남성 레몽 바예(Raymond Baillet)가 포함되었으며, 모두 등이나 머리에 치명상을 입은 상태였다. 가해자는 정식 군이나 경찰 소속이 아닌 민간인 신분으로, AR-15 반자동 소총을 풀오토 사격이 가능하도록 불법 개조한 상태에서 사용했다. 현장 검거 당시, 그는 “우리는 침묵하지 않는다”, “공화국은 이미 끝났다”는 말을 반복하며 저항했고, 벨포르 경찰 특공대가 진입하여 저격 위치에서 그를 체포하였다. 소지품에서는 ‘의회를 해체하라’, ‘사민당을 숙청하라’는 내용이 담긴 유인물, 조국의 방패 중앙조직 명의의 문서, 추가 탄창 3개와 소형 권총 1정이 발견되었다. 사건 직후, 벨포르 시는 사실상 비상 상황에 돌입했다. 헌정 위기라는 단어가 더 이상 추상적인 수사에 그치지 않게 되었다. 시민이, 거리에서, 정치적 주장 하나로 총에 맞아 쓰러진 것이다. 이 충격적인 소식이 전국에 중계되자, 시민사회와 야당, 언론은 거의 동시에 대통령 책임론을 공식화했다. 사회민주당 대표단은 긴급 성명에서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 “대통령은 불과 이틀 전, 이 집단을 ‘고귀하다’고 칭송했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시민의 피다. 대통령은 오늘을 기점으로, 더 이상 합법적 통치자가 아니다. 그는 총을 들고, 헌법을 버렸다.” 이 사건 이후, 조국의 방패는 공식적으로 “테러조직”으로 규정되어야 한다”는 요구가 폭발적으로 쏟아졌다. 벨포르 시민들은 즉시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왔고, “피를 멈춰라”, “그는 우리 대통령이 아니다”라는 팻말이 시내 전역에 걸렸다. 그럼에도 대통령궁은 사건 직후 18시간 동안 일체의 언급 없이 침묵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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